42.195 km 엄청난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죠.
사실 처음에는 그냥 동네에서 조금 달려보자는게 시작이었고 3km, 4km 정도 뛰면 힘들어 핵핵 대며 집으로 돌아왔던게 바로 2년전입니다. 어느날 롱기스트런이라는 현대자동차가 주최하는 참가비 무료에 참가자들이 달리는 만큼 숲을 조성하는 의미있는 대회에 덜컥 참가신청을 한게 변곡점이었던것 같습니다.
'10km 를 내가 달릴 수 있을까?' 하며 걱정에 잠을 못 이루던 때가 있었고 신발도 처음으로 러닝화를 사보았고, 심박계도 사면서 조금씩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롱기스트런은 무사히 완주를 하였고 기록도 53분대라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얻게 되면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달리는 방법도 몰랐고 뭐 인터넷으로 주워 들은 정보들을 대충 기억하며 달렸습니다만 기분 만큼은 정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2022.09.21 - [살아가는이야기/달리는이야기] - 10km 러닝에 도전하다(feat. 40대 중반 회사원 아저씨)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는 결국 다음해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게 만들었고 대회 직전 부상이 있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하프마라톤도 2시간 3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를 하였습니다. 10km 기록에 비하면 아쉬운 기록이었지만 대회 직전(2주전) 부상도 있었던 것에 비하면 성공적인 결과 였습니다. 또 한번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은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성과였겠죠.
2023.04.27 - [살아가는이야기/달리는이야기] - [달리기] 처음도전하는 하프 마라톤 성공기
그렇게 이제 마라톤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하기 위하여 가민 포러너965를 큰맘먹고 마련했습니다. 신발도 이제 좀 더 요즘 트랜드에 맞는 최신 러닝화로 구입했고요. 그렇게 1주일에 5회 이상 빠짐없이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3개월 정도를 주기로 양쪽 발목과 무릎에 부상도 입었습니다. 막상 부상으로 달리기를 못하니 정말 슬프더군요. 부상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조금더 풀어보기로 하고요.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로는 운동하기 어려운 겨울에도 꾸준히 달렸습니다.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발목보호대도 구입하였고 달리기에 적합한 바람막이와 옷가지들도 중국에서 저렴하게 장만하였습니다. 추워도, 눈이와도, 계속 달렸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꾸준히 달렸던게 가장 중요했던거 같습니다.
3월 동아마라톤을 앞두고 20km, 30km 를 LSD 로 뛰고 나서 약간의 자신감도 생기긴 하였지만 여전히 42km 는 저에게 너무나 높은 산이었습니다.
목표는 SUB4
풀코스를 SUB4 로 완주하기 위하여는 1km 를 5분 40초 정도로 달리는 속도로 42 km 를 내내 달려야 합니다. 동아마라톤 참가 직전까지 조깅 페이스를 5분 40초까지 끌어 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조깅 페이스라고 하면 심박존 기준으로 3단계(유산소) 에서도 아래쪽, 달리면서 옆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편안한 달리기 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5분 50초까지는 괜찮았던거 같은데 5분 40초까지 끌어올리면 곧바로 심박이 올라갔습니다. 체온이 올라가서 심박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옷을 더 얇게 입고 뛰어보고 중간 중간 템포런, 질주 훈련 등을 한 결과 5분 45초 정도에서도 심박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고 일단 이정도로 대회날도 달려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회 1주일 전부터는 식단에 들어갔습니다. 일,월,화,수요일 까지는 단백질 위주로 식사를 하고 탄수화물은 거의 끊다 시피 하였습니다. 목,금,토요일에는 카보로딩이라고 하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고요. 몸에서 탄수화물을 쭉쭉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탄수화물이 그렇게 달고 맛있다는 것을 4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느낀 것 같습니다. ㅎ
대망의 대회날
광화문 앞 어마어마한 인파에 기가 질려 버립니다. 옷을 부랴부랴 갈아있고난 뒤 회사 마라톤동호회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를 하는데 몇차례 풀코스 완주를 한 동료 분이 조언을 해주더군요.
"절대 초반에 페이스를 올리지 마세요. 32km 가 지나면 완전 다른 세계입니다. 그때까지 체력을 아껴둬야 하는거 잊지 마세요. 화이팅!"
근처 화장실을 찾아 소변도 보고, 주변 거리를 천천히 뛰며 컨디션 체크도 하였습니다. 러닝 벨트에 에너지젤도 잘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도 하고 한가한 곳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긴장된 마음을 안정시켜 보았습니다. 광화문 앞은 어디를 봐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출발선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속에 공간이 협소하여 준비운동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게 느껴지고 A 그룹, B 그룹, C 그룹, D 그룹까지 시간차를 두고 출발한뒤 제가 속한 E 그룹이 출발선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드디어 출발!
사람들이 구름처럼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함께 달리기 시작한 수많은 달림이 들의 발자국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듯 합니다. 저는 초반에 체력을 아껴둬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6분 페이스로 천천히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러너 들이 저를 앞질러 나아갔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40km 가 넘으면 어짜치 내가 다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믿고 20km 까지 최대한 체력을 아껴 달리기로 마음 먹고 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초반 2km 정도를 지나면서 워밍업은 된 듯 하여 5분 50초 페이스 정도로 쭉 달리기로 합니다.
서울 한복판을 달리는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을지로와 청계천, 종로를 관통하는 서울마라톤은 정말 눈이 즐거운 코스라 말할 수 있습니다. 초반 달리기 코스가 대체로 평탄하여 체력 관리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청계천을 왕복하는 구간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긴 하였으나 다시 종로로 나가 서울의 중심을 달리는 느낌은 정말 짜릿할 정도였습니다.
종로를 지나 신설동을 향할 때는 이미 레이스의 절반을 넘긴 상황이었고 아직까지 유산소 영역대의 심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10km 이상을 달려준 것이 워밍업이 충분히 잘 되었는지 심박도 안정적으로 서서히 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몸에 피로감도 적었고 이정도면 계획대로 완주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물론 10km 를 조금 넘긴 시점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 시간을 좀 까먹기는 하였지만 계획 보다 5초, 10초 빠르게 중반까지 운영을 하였기 때문에 크게 무리는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장안동을 지나 어린이 대공원을 통과하고 나니 어느 덧 30km 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고비가 왔다! 그리고 찾아온 러너스하이!
30km 를 넘기는 군자역 ~ 어린이 대공원 구간은 정말 많은 시민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내서 달릴 수 있었는데요, 이때 쯤 부터 다리는 물론이고 허리와 어깨, 목까지 강한 피로감이 몰려 왔습니다. 네, 제가 그동안 한번에 달려본 최대 거리가 30km 였던 만큼 대회에서도 바로 한계가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말대로 32km 즈음에는 정말이지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어찌어찌 계획된 페이스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만 두고 싶다는 충동이 아주 강하게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시선은 점점 발끝으로 떨어지고 정신이 멍해지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멍해지며 정말 제 발끝에만 시선이 멈춰 기계적으로 달리는 그 순간 직전까지 느꼈던 엄청난 고통이 순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무릎도, 허리도 발목도 전혀 통증이 안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몸이 가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증이 사라지니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정신이 아득히 멀리 날아간 느낌이어서 그 순간의 느낌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한 500m 정도를 그렇게 달렸을까요? 갑자기 한강 쪽에서 강한 바람이 휙~ 불어오면서 모자가 벗겨져 뒤쪽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황급히 모자를 주우러 되돌아 서는 순간~ 사라졌던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ㅋㅋ. 이게 러너스하이 였던가? ㅋㅋㅋ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많은 러너들이 저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보고 얼른 모자를 찾아 주워 쓰고 저도 다시 달렸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연세 지긋한 노인 분들도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고 통통한 아주머니도, 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친구도 열심히 앞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저도 힘을 쥐어 짜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첫 출전한 풀코스 마라톤에서 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많은 달림이 분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35km ~ 42km 까지는 정말 함께 달리는 분들이 없었다면 분명 포기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32km 이후부터 두세번 짧게 러너스하이가 온것 같습니다. 잠깐이라도 뭔가 회복되는 느낌이 있었기에 완주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아마도 극심한 고통에 뇌가 잠시 도파민을 뿜어 내어 순간 통증을 잊게 만드는 우리 신체의 신기한 기전을 아마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달릴때 느끼는 기분좋은 상쾌함 같은 느낌과는 거리가 먼 강한 진통제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승선 통과
마지막 2km 정도는 정말 지옥같은 느낌이었달까요? 남은 힘을 쥐어 짜내보려 했지만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ㅋ. 잠실역을 돌아 종합운동장까지 가는 길이 정말 너무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출발할때 다짐했던 것 처럼 30km 이후 부터는 정말 많은 분들을 추월하며 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라 마음먹고 마지막 질주를 해보려 했지만 안되더군요. ㅋㅋ 더이상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결승선을 겨우겨우 통과 하였습니다.
제 인생에 기억에 남을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 과연 SUB4 를 달성 하였을까요?
두구두구
과연?
기록... 을 보기전에
먼저 제 가민 포러너에 기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번 레이스를 복기 해 봅니다 ㅋ
일단 2024 서울 마라톤 풀코스 경기의 제 체력 게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경기 운영을 아주 잘 한 듯 합니다. 가지고 있는 제 체력을 모두 소진하며 결승선을 통과 하였다고 보여지는데요, 게이지를 보면 마지막에 스퍼트할 힘이 나지 않은게 당연한 듯 합니다. 잘했다 나.
다음은 목표페이스와 실제 경기중 기록된 페이스, 그리고 전체 심박수를 나란히 살펴보겠습니다.
6분 페이스로 시작하여 5분 20초 페이스로 서서히 끌어올려 레이스를 완주하려던 계획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중간중간 급수를 위하여 멈춘것이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아주 양호하게 페이스 운영을 한 것으로 보이고요, 심박도 2시간 30분을 넘기기 전까지는 유산소 영역 (제 기준으로 130~150) 안에서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에 체력도 크게 깎이지 않고 중반까지 레이스를 잘 펼친 것 같습니다. 확실히 3시간 이후부터는 심리적으로도 매우 힘들어서였는지 페이스도 불규칙하고 심박도 다소 불규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획했던 레이스를 잘 펼친 나 칭찬해~
중간중간 계획보다 빠르게 페이스가 올라간 구간은 앞에 아름다운 러너분이 계서서 쫒아가느라 그런건 절대 아닙니다.ㅋ 무리를 뚫고 추월했거나 내리막이었거나 그럴거에요. 아마도. ㄷㄷ
처음 풀코스 도전하시는 분들 께서는 제 레이스 운영 방식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인의 페이스에 맞게 적당히 조정하여 반영하여 운영 해보면 되겠죠?
과연 그럼 최종 기록은?
두구두구
두구두구
쨔짠~ 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SUB4 를 달성하였습니다. 턱걸이긴 하지만 뭣이 중요하겠습니까? ㅋ
짝짝짝
너무나 행복하고 감격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제 46년 인생에 이만큼 값진 경험을 한게 몇번이나 있었나 싶을 만큼 감격적인 순간이었어요. 오롯이 제 두 다리로 42.195km를 달려 결승선을 통과한 이 느낌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날아갈 것 같은 멋진 기분이었습니다.
함께 달려준 모든 달림이 분들께 감사드리고 완주 지점에 저를 마중나온 사랑하는 가족들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다행히 부상도 없었고 레이스를 마친 후에도 지친 몸상태를 제외 하고는 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레이스를 펼치며 사용했던 장비와 이것 저것을 정리해 봅니다.
- 신발 : 아식스 매직스피드3
- 상의 : 자외선 차단용 기능성 쿨링 긴팔 티셔츠 + 중국산 민소매 티셔츠
- 하의 : 중국산 7000원 자리 러닝 반바지
- 양말 : 인진지 발가락 양말
- 종아리 슬리브
- 포러너 965
- 중국산 스포츠 고글 (5000원)
- 노스페이스 캡 모자
- 아미노 바이탈 2포
- 러닝 포션(직접제조 - BCAA 2알 + 식염포도당 8알 + 꿀 + 물 + 에너지젤 2포) 8번에 나눠서 복용
이상입니다.
그럼 다들 즐겁고 행복한 러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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